인간만사 새옹지마

인간만사 새옹지마

매년 이 때만 되면 다사다난했다는 표현이 많이 사용됩니다. 정말 올해도 이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회사 사운의 명암이 갈릴 정도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때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마치 오너인양 행사하던 딸이 사회여론의 집중포화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런것을 비유로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고사(故事)가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세상 만사가 변전무상하므로 인생의 길흉화복을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을 의미하며 길흉화복의 덧없음을 비유한 말로 유래되었습니다.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 근처에 한 노옹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옹이 늘 즐겨타고 다니던 말이 타지로 도망쳐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 이런저런 말로 그를 위로하자 그는 조금도 서운치 않다며 누가 이 일을 알겠소 복이 될지 화가 될지라며 오히려 동네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런던 어느 날 도망갔던 노옹의 말이 타지에서 아주 좋은 준마와 함께 돌아 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기뻐하며 노인에게 얼마나 기쁘냐며 참 좋으시겠다고 말하자 노옹은 예전과 같이 누가 압니까? 이 일이 복이될지 화가될지노인의 말이 씨가 되었던지 며칠 후 그가 가장 아끼던 아들이 준마를 타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한쪽을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또 마을 사람들이 와서 어쩌면 좋으냐고 위로하자 태연하게 누가 압니까? 이 일이 복이될지.. 그 후로 적군이 침략해 오자 젊은이들을 징집해 갔는데 젊은이들은 거의 다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은 한 쪽을 저는 장애인이었기에 무사했다고 합니다. 그 후에 사람들에게 크고작은 행불행한 일이 닥치면 인간만사 새옹지마란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인간사는 누구나 공평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크고작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2014년 누구든 크고작은 희로애락이 다 있었을 겁니다. 지금 어떻게 그 일을 대처했는가 생각해 보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그 일이 복될지 화될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있을때는 함께 기뻐하고 고통스러울 땐 함께 고통을 분담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우를 돌보면서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조금이나마 분담해 보며 지금은 내가 환우들을 살피지만 나도 언젠가 저 자리에 누을 때를 생각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지금 일어난 일로 일희일비(日喜日悲)하지말고 어떤 일에도 자족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오늘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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