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글 목사님을 추모하며

조지 오글(George E. Ogle, 한국명 오명걸) 목사님을 추모합니다.
1954년, 한국 인천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던 조지 오글 목사님이 지난 11월 15일 미국콜로라도, 마리에타에서 향년 91세를 일기로 별세 하셨습니다. 오글 목사님은 1929년 1월 17일 펜실베이니아주 핏케언에서 출생. 감리교 신학교인 듀크 신학교를 졸업하던 1954년, 마국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 연회 파송을 받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선교사로 파송 받으신 분입니다. 1962년 인천 화수동의 조그만 초가집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모태가된 인천 산업전도회(Incheon Industrial Evangelism)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노동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외국인 신분으로 노동자가 될 수 없었기에 노동자들과 가족들을 도우셨습니다. 1974년 교회협의 10월 첫 번째 목요기도회에서, 중앙정보부가 조작하고 날조한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했고, 당시 정권에 의해 그해 12월 14일 미국으로 강제 추방을 당하신 바 있습니다. 하지만 추방당한 후에도 미국 의회 청문회에 나가 인혁당 사건의 진상에 관해 증언했고, 미국 전역을 돌며 한국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일에 매진하셨습니다.
 내가 조지 오글 목사님을 만나 뵈었던 것은 북일리노이 연회에서 였습니다. 어떤 영화배우 같이 잘 생긴 분이 한국 목사들을 찾아와 “아이고, 우리 한국 사람들 만나니 살 것 같네” 하시며,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나눠 주시던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오글 목사님은 매 연회 첫날에는 한인 목회자들 모임에 참석하시기도 하셨다는 것을 알았지요. 은퇴하시고는 아틀란타 근교 마리에타에 살고 계셨는데 당시 김해종 감독님과 함께 찾아 뵈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목사님은 한국에 관한 책을 2권 집필했으며 북핵 문제에 관해 깊은 우려를 하시며 함께 기도하자고 호소하시던 목사님, 파킨슨병을 앓으셨던 목사님은 코로나 펜데믹의 한가운데서 운명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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