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설교-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민수기 6장22~27)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민수기 6장22~27)
성경본문: 민수기6:22-27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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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복 받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새해가 되면 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막연한 기대감만 가질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복을 받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 사람들은 기껏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며 소원을 빌어봅니다.
혹은 정월 대보름날 둥근 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봅니다.
그렇게 해서 복을 받는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이런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복을 받고 싶어 하지만 진짜 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또 어떻게 복을 받는지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행히 성경은 복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아론의 축도’라 불리는 말씀입니다.
구약과 신약 전체 가운데 아름답고 은혜로운 구절들 중에 손꼽히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만이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어떤 것들이며 그 복을 받는 비결이 무엇이지 배울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아론의 축도(祝禱)는 ‘축복의 보물창고’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남으로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복의 근원 :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복의 근원에 관해 살펴보기 전에 먼저 복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넘어갑니다.
복이란 삶에 만족을 주는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새해 복 많이 만드세요!”라고 말해야 맞을 겁니다.
그러니까 복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거나 노력해서 얻는 게 아닙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도 모르면서 무턱대고 받으려고 하니 어처구니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저 막연하게 운수가 좋으니 나쁘니 말합니다.
심지어 중국집 같은 데서는 ‘복’(福) 자를 거꾸로 붙여 놓습니다.
그러면 복이 쏟아진대나!
잘 생각해 보면 정말 웃깁니다.
성경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일 뿐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고 인생만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섭리주이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찔끔 주고 마는 게 아니라 풍성하게 넘치도록 주십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불러봅니다.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
본문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론의 축도입니다.
하나님이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 아들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신 후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사장이 축복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다는 겁니다.
구구절절 살펴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민6:24~26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 25 여호와는 ... 26 여호와는 ...” 24절, 25절, 26절에 반복해서 “여호와는 ... 여호와는 ... 여호와는 ... ”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임을 3중으로 강조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같은 사람은 이를 가리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임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여러 구절에서 하나님이 유일한 복의 근원이심을 증거합니다.
시16:2 보면 다윗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하나님 외에 복을 주는 자가 없다는 겁니다.
야고보는 또 이렇게 증거합니다.
약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 ”
여기서 ‘은사’나 ‘선물’은 복이란 말로 바꾸어서 이해하셔도 됩니다.
모든 복이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되 아주 적극적으로 복을 주고 싶어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치 복을 주고 싶어 (죄송한 표현이지만) 안달하는 모습 같습니다.
민6:25(상)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 ”
하나님이 영이신데 무슨 얼굴이 있겠습니까!
의인법적 표현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민6:26(상)을 보면 하나님이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 ”
얼굴을 향하고 드시는 것은 복을 주고 싶어 하는 열심을 나타냅니다.
마치 미소를 띠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님과 같은 모습입니다.
민6:27(하)을 보면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내가’는 강세형입니다.
히브리어 문법에서는 동사 앞에 인칭대명사를 굳이 쓰지 않아도 문장이 성립합니다. 왜냐하면 동사에 인칭과 시제 표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강조하는 경우에는 굳이 붙여줍니다.
‘나’(I)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니’인데 여기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이 직접 흔쾌한 마음으로 복을 주심을 강조해서 말씀하신 겁니다.
신약성경 중에서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죠. 히6:14 “ ...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 ”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처럼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십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육안에 보이지 않지만 독생자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대속해 주셨습니다.
이제 십자가 복음을 믿는 자마다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은 얻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당당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음을 확신합니까?
“아멘!”이죠.
그 사실 자체가 이미 최고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심으로 모든 종류의 복을 하나님에게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세 가지 복 : 보호, 은혜, 평안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떤 것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만복(萬福)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종합적인 것으로 설명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외면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이고, 현세적인 것들만 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복(五福) 같은 게 그런 거죠.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이런 것들을 포함하는 동시에 내면적이고, 영적이고, 내세적인 것들이 더 귀한 복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종합적인 복이고 한 마디로 만복(萬福)입니다.
본문에는 만복(萬福)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 세 가지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보호’, ‘은혜’, 그리고 ‘평안의 복’입니다.
① 보호 :
세속적인 복 개념만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 이게 무슨 대단한 복인가 하고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게 정말 큰 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성공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간다 해도 언제든지 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다보면 얼마나 병 많고 탈 많고 사건과 사고가 많습니까!
그러므로 무엇은 많이 이루고 소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에서 보호받는 것은 그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본문 24절을 보십시오. 민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기서 ‘지키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마르’인데 본래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입니다. 옛날 가시철망을 쳐서 보호하는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위험천만한 순간을 많이 겪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런 경험을 한 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시34: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동원해서 경호해 주신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미국의 페이스북은 CEO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가족에 대한 경호비로 2018년 한 해 동안 2260만달러(약 260억원)를 썼다고 합니다. 그의 연봉은 1 달러인데 경호비만 해도 엄청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경호비를 거의 안 써도 하나님이 지켜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121:3~4 “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의인법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보호해 주신다는 겁니다.
험한 세상 살면서 별의별 일들을 다 겪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심을 경험합니다.
이런 간증을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 수단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이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답니다. 파송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로 기도를 부탁하는데 마침 그때 목사님 옆에 그 교회 성도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참모총장 출신이었습니다.
그분이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다가 파병 의무대에 요청해서 헬기로 후송하게 해 주었답니다. 극적으로 치료받고 구사일생으로 회복되었다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이렇게 기기묘묘합니다.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0:28~29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no one can snatch them out of my hand) 29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no one can snatch them out of my Father's hand-NIV)”
의인법적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하나님 아버지의 손은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 사탄과 원수들이 아무리 공격해도 그 큰 능력으로 보호해 주시므로 절대 우리를 잡아채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국 승리하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겁니다.
아무쪼록 험한 세상을 살지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보호의 복을 받음으로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② 은혜 :
민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은혜’는 히브리어로 ‘헨’인데, 동사 ‘하난’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하난’은 원래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상체를 기울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이를 특별 은혜라고 하죠.
그런데 우리의 육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십니다.
이를 일반 은혜라고 하죠.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믿음이 없어서 맨날 염려하고 살지만 지나고 보면 하나님이 필요한 만큼 공급해 주셨음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도 동일하게 은혜로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작시자 파니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의 간증입니다.
그녀는 생후 6주 만에 눈병을 앓다가 실명했습니다.
다행히 예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후 늘 감사하며 찬송시를 썼습니다.
95세까지 장수하며 9천 편의 찬송시를 썼으니 대단하죠.
그 중에 여러 곡이 우리 찬송가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감사하며 살았는지 심지어 이런 고백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나는 눈이 먼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눈을 뜨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서 눈을 뜬 후 제일 처음으로 주님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고백하기까지 숱한 체험을 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이런 겁니다.
무명 시절 시각장애도 고통스러웠지만 가난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한번은 그 당시 돈으로 5달러(145년 전이니까 상당액)가 꼭 필요한데 없어서 너무 힘들어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려서 문을 여니까 모르는 사람이 와서 묻는 겁니다.
“당신이 찬송가 가사를 쓰는 분이에요? 소문을 듣고 꼭 만나고 싶어서 왔는데요 ... ”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손에 뭔가를 쥐어주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정확히 5 달러였습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가 놀라웠습니다.
그 감동을 담아 쓴 찬송시가 바로 384장입니다.
특히 2절을 보면 그녀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족한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롬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아끼시겠느냐 이겁니다.
필요한 것을 무엇이든 주실 게 분명하다는 겁니다.
혹시 주시지 않는다면 굳이 필요하지 않아서, 혹은 연단을 위해서나 좋은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늦추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족한 은혜 주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③ 평안 :
민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평강’은 평안이나 평화라는 말과 같은데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특별합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것은 일시적이고 육신적인 것입니다.
겨우 안락함이나 편리함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영원하고 신령한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을 초월합니다.
심지어 위기에 처하거나 환난을 당해도 그 가운데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천국제입니다.
요즘은 한국제도 너무 좋지만 과거에 미제나 일제를 좋아할 때가 있었죠.
물 건너 온 가라고 말하면서 찾았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천국제이니까 하늘 건너온 것으로 세상 것과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평안입니다.
여자 프로골프 고진영 선수의 이야기입니다.
LPGA 2019 시즌에서 3승을 거두어 세계 1위를 차지했죠. ‘강철 멘탈’이라 불리는 선수입니다.
작년에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날까지 뒤지고 있었는데 마지막 날 역전했는데 사연은 이랬습니다.
악천후로 다른 유수한 선수들은 난조를 보였고 경기가 두 시간이나 지연됐습니다. 모두가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는 오히려 기도하며 말씀 들을 시간이 생겼다며 유튜브로 설교를 들으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결국 침착한 가운데 경기에 임할 수 있었고 우승했습니다.
보통 선수들이 멘탈 트레이닝을 하고 난리를 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증명해 보인 쾌거입니다.
부디 험한 세상 살면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늘 감사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복을 받는 비결 : 축복 기도, 말씀 청종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복을 하나님이 주시기를 심히 소원하시지만 우리 쪽에서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주파수가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매치가 되지 않는 미스매치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줘도 못 받는 겁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것은 축복 기도입니다.
그리고 다른 구절들을 보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말씀 청종입니다.
① 축복 기도 :
본문은 구약 제사장의 축도입니다.
하나님이 구스라엘 백성에게 복 주실 때 제사장의 축도를 사용하셨습니다.
민6: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그러니까 축도는 복을 주시는 통로입니다.
이런 축도는 너무 귀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에게 축도권을 주셨습니다.
요즘에는 주로 고후13:13에 나오는 축도문을 사용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하는 겁니다.
유럽교회 같은 데서는 민수기 6장의 축도를 자주 사용합니다. 두 가지 모두 귀한 축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축도(祝禱)는 정확히 표현하면 강복(降福, benediction)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나님이 축도를 사용해서 복을 내려 주시니까 내릴 降, 복 福 자를 써서 강복(降福)인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군부대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부대 안에 영어채플과 한국어 채플이 있었는데 어느 주일에 한국어 채플에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 미군 병사 몇 명이 온 겁니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예배 후에 가버리는 겁니다.
뭔가 싶었는데 그 다음 주일에도 그랬습니다.
목사님이 혹시 다음 주일에도 오나 싶어 안내위원에게 잡아 두라고 부탁해 두었습니다.
정말 그 날도 왔습니다.
만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미군 군목이 한 달 휴가를 받아 본국에 갔다는 겁니다.
예배를 드렸는데 축도를 받지 못해서 왔다는 겁니다.
한국어를 몰라도 대동소이하니까 뒷자리에 앉아서 축도를 받고 갔다는 겁니다.
목사님이 그들의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축도가 귀한 것임을 아는 그들의 신앙이 너무 귀하다고 간증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는 축도를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 ”
만인제사장(萬人祭司長)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만 대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 나 자신을 축복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축복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제사장권을 십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쑥스럽고 아이들도 싫어할 수 있지만 그 고비를 넘기면 좋은 습관처럼 자녀에게 축복기도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처음에는 싫어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까, 그리고 그들이 커가면서 인생의 이런 저런 상황 속에서 기도 응답을 체험하니까 기도를 귀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이제는 다 커서 결혼했는데도 수시로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또 누구나 성도라면 서로 서로를 위해 축복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목사의 공적인 축도와 달라도 하나님이 얼마든지 그 축복 기도를 통해 복을 주십니다.
히4:16가 장려하는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기도하면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공적 예배에도 사적인 개인기도 시간에도 축복 기도를 활용하심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풍성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② 말씀 청종 :
시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길 ‘도’(道)와 말씀 ‘도’(道)가 같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삶을 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공항이나 지하철에 가면 걷는 구간이 길 때 설치되어 있는 무빙워크(자동보도)를 타고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갑니다.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갈 수도 있습니다.
급할 때는 그 위에서 빨리 걷기도 합니다.
그러면 힘들이지 않고 쉽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는 게 바로 이런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얼마나 쉽고 인생이 복된지 모릅니다.
신명기 28장을 흔히 ‘축복 장’이라 부르는데, 사실은 ‘축복과 저주의 장’입니다.
말씀에 청종하면 축복, 말씀에 청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청종이란 말은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은 대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복이 따라 붙는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씀에 청종하지 않으면, 말씀을 듣지 않거나 듣고도 불순종하면 복을 받는 대신 저주가 따라 붙는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늘 청종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복을 주시되 복에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마치 복을 주고 싶어 안달이 나신 것처럼 복 주시는 것을 심히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한다면 정말 어리석고 한심한 일입니다.
부디 복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금년 한 해, 아니 일평생 그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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